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나에게 던진 질문 Poem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어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핫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 中>


Glocal Camp in China - 운남 리장에서 찾은 Local의 의미 SKT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Global보다는 Glocal

Glocal Camp 란?

Glocal 이라는 단어는 Global 과 Local 의 합성어이며, 현재 Global시대로써 전세계로 무조건 뻗어나가고 있는 지금, 다시 각 지역을 돌아보며, 도움이 필요한 곳을 되돌아보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Glocal Camp는 매년 여름과 겨울, 중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진행됩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선발된 Sunny들과 한국의 Sunny들이 함께,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선발된 Sunny들과 중국의 Sunny들이 함께 모여 문화교류를 하고, 봉사활동을 합니다.

 SunnyGlocal Camp 면접날. 면접관은 나에게 Glocal의 의미를 물었다. 마치 당연한 질문의 예상 답안을 외운 듯이 나는 줄줄이 말했다. 지역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 하나로 획일화되는 세계화 속에서 무너지는 지역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이름도 정체성 가득 들어있는 Glocal Camp가 아닌가. Glocal Camp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Local이다. 솔직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1월 21일, 우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박 5일동안의 국내합숙을 시작했고, 합숙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가 캠프를 할 곳인 중국 운남성 리장에 있는 '백사촌 소학교'의 아이들에게 그 곳의 아름다움, 그 곳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운남성, 리장, 백사촌, 나시족, 동파문자, 나시춤 등 우리는 그 지역에 대해 열심히 조사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치열하게 준비했던 4박 5일은 지났다. 드디어!! 우리는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 반, '과연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반의 복잡한 마음으로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나시족 그리고 동파문자.
 

중국사람들 대부분은 한족이지만 운남성 리장에는 대부분 나시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시족 자치현도 형성되어 있다. 중국 전체에 3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나시족은 소수민족 중에서도 그 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우리는 운남성 리장 북쪽에 위치한 나시족 전통마을인 백사촌에 도착했다. 이곳에 유명한 백사벽화가 200점 이상 보존되어 있다. 리장이 유명 관광지가 되어 제 모습을 잃고 있는 것과 달리, 비교적 마을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벽화 속 그림은 바로 나시족이 1000년 전부터 사용해 온 순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다. 동파[東巴]는 나시어(語)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동파문자는 샤머니즘 성격을 띤 나시족의 전통종교 ‘둥바교’의 경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 동파문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종교적으로는 사용된다고 한다. 동파문자는 원시불교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져 그것으로 쓰인 '고대 나시 둥바문화 필사본(Ancient Naxi Dongba Literature Manuscripts)이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나시족의 초등학생 중 나시언어를 말할 수 있는 수는 30%가 밑도는 수준이며, 그들의 고유문자인 동파문자 역시 잘 모른다. 최근 들어 리장시의 관광업이 발전되면서 경제적인 수준은 발전했지만, 교육부분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떨어졌다. 어쩌면 그들의 아름다운 Local 문화는 경제활성화라는 명목아래 점점 사라져 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은 조사를 통해서 알게된 동파문자의 뜻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글라스데코를 이용해서 동파문자를 예쁘게 꾸몄다. 아이들이 집중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진정한 Global을 위하여.

백수촌 소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Sunny들을 만났을 때, "지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그 곳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고, 그 곳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들도 아이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또 리장에서 느껴지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전경, 그들의 문자와 전통의상, 그들의 정서가 녹아 들어있는 춤에서, 나는 머리로만 이해했던 Local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문화가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은 주제 넘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소학교의 아이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우리를 맞아주었고, 우리에게 그들의 춤을 알려주려고 노력했었으니까. 아이들의 그러한 태도에 나는 ' 나의 Local을 잘 알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나의 Local을 소개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라져 가는 Local을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의 Local에 관심을 갖고, 다른 지역까지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닐까? 각각의 Local의 소중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Sunny Glocal Camp에서 가장 큰 깨달음이며, 바로 그것이 진정한 Global로 나아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 

 


'친일 주제 다큐' EBS 김진혁 피디, 결국 사표. 잡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2572513


지난주 금요일 EBS 기자단 상반기 간담회를 했는데 김진혁 PD에 대해 여쭤보았다. 지난 4월 지식채널 e 제작진 인터뷰를 끝내고 EBS를 나오는데 시위하는 게 잊혀지지 않더라. 김진혁 PD는 광우병과 관련된 지식채널 e를 만들어 지식채널e를 하차했고, 이번에 새로 만든 다큐프라임 <나는 독립 유공자의 후손 입니다> 역시 제작 중단이 되었다. 김진혁 PD는 수학 교육팀으로 다시 발령이 났고, 결국 사표를 내셨단다.

공영 방송을 개인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것도 옳은 일은 아니다. 애당초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 진행에도 그다지 순수성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중립인 건지, 공영방송에서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언론인은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 하는게 적정선 일까.

세상 바라보는 눈을 기르고 싶어서, 책도 많이 읽고 각 종 다큐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한다. 물론 그것 역시 나를 세뇌시키고, 점점 생각을 굳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의 젊은 감수성 및 사회에 대한 관심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지는 못해도 최악의 상태를 막아 줄 테니까.;

요즘 시문학만 읽다가, 이번 주말내내 사회과학 책을 읽고 든 생각정리.

문정희 - 물개의 집에서 Poem

  

사랑에 대해서라면
너무 깊이 생각해버린 것 같다
사랑은 그저 만나는 것이었다
지금 못 만나면
돌아오는 가을쯤 만나고
그때도 못 만나면
3년 후
그것도 안 되면 죽은 후 어디
강어귀 물개의 집에서라도 만나고
사랑에 대해서라면
너무 주려고만 했던 것 같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언제나 더 부끄러워
결국 혼자 타오르다 혼자 스러졌었다
사랑은 그저 만나는 것이었다
만나서 뜨겁게 깊어지고 환하게 넓어져서
그 깊이와 그 넓이로
세상도 크게 한번 껴안는 것이었다

 

<투게더> Together, 함께, 같이의 가치. Book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홀로' 라기보다 '함께', '같이' 라는 가치가 더 두드러지는 듯하다. 진화심리학과 생물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등 분과 학문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공유, 협력, 함께, 공감 ’등의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그 두꺼운 <공감의 시대>라는 책도 있지 않나? 아마 '함께' 라는 것을 필두로 해서 책도 참 많이 나왔다. 그 이유은 아마 전쟁과 불평등, 빈곤과 같이 그칠 줄 모르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고 있는 수많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협력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규정하거나 협력을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특성으로 단정하는 것만으로 오늘날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데엔 부족함이 있다.

노동·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색다르고 폭넓은 접근을 통해 협력의 사회학적 의미를 고찰한 책이다. 이 책은 세넷이 구상하고 있는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의 두번째 책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기술에 대해 설명하려는 프로젝트로, 이번에 나온 <투게더>는 인간이 사회적인 협력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전근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협력과 관련된 무수한 사례와 이론을 끌어다 펼쳐놓는다. 이를 관통하는 지은이의 주된 문제의식은 협력이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협력을 하나의 '실기'를 곧 기술로 파악해야 한다.  리처드 세넷은 불평등이 만연하고 노동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는 현대 사회가 남과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 안으로 움츠러드는 ‘비협동적인 자아’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능력은 어떤 이념이나 제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작업장’에서 ‘실기’로서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간의 차이는 국적보다는 전국적 연대와 지역적 연대간의 대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론적으로는 두 진영 모두 공동의 불의와 대적하고 있었으므로 함께 섞여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향식과 상향식 노선의 차이는 기질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분리가 현대에 우리에게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기질적 차이는 좌파 내부의 투쟁보다 더 넓은 나침반에 따라 움직인다. (85쪽)

공감과 감정이입은 둘 다 인식을 전달하며, 둘 다 연대를 형성하지만, 하나는 끌어안음이고 하나는 즉각적인 만남이다. 공감은 동일시라는 상상적 행동을 통해 차이를 극복한다. 감정이입은 그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른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 공감은 대개 감정이입보다 더 강한 감정으로 여겨져 왔다. 왜나하면 "나는 너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에 악센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에고를 활성화 시킨다. 하지만 감정이입은 더 강력한 실천이다. (51쪽)

또한,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로 구분될 수 있는 이 두 흐름에서 지은이는 협력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지적해낸다. 곧 정치적 좌파가 협력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면, 사회적 좌파는 협력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처드 세넷은 이런 비교의 구도에서 대화적 대화와 감정이입에 더 무게를 싣는데, 이들이 현대 사회에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협력의 기술을 갈고닦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협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것’을 되살리기 위해선 나와 남의 차이에 기초한 대화적 대화, 감정이입이 더욱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를 통해  "20세기는 연대의 이름을 내걸고 협력을 왜곡했다" 고 말한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확신감을 되살리려는 연대감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 생활을 잔인할 정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리처드 세넷은의 <투게더>를 통해 ‘사회적인 것’을 이룰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역량에 더욱 주목해 보자, '함께'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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