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Miserables> 레미제라블에서 '사랑'을 읽다. Book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2000장이 넘어가고, 길고도 길다. '레미제라블'은 장발장 이야기가 이 소설의 3분의 1 정도, 나머지는 19세기 초 사회와 풍습, 그리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작자의 견해. 프랑스 혁명, 6월 혁명, 7월 혁명 기타 등등 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 소설을 완벽히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당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해야 되는데 그러기에 나의 지식이 너무 짧다. 그런 이야기는 많은 서평과 리뷰에서 자세히 다뤄 놓고 있으니,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굳이 그걸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된다. 사람들 모두를 원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완전하지 않는 시대를 원망해야 한다."
"그것은 소수 인간에 의한 '모든 인간의 권리' 의 박탈, 소수 특권에 의한 전 세계의 권리의 박탈이었다."
"그들이 양도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쟁취한 것이고, 그들이 반역으로 빼앗았다고 외치는 것은 우리의 권리였다."


내가 격동의 프랑스를 보고 느낀 것이라면, 레미제라블의 뜻 그대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비참했으며 (특히 아무런 죄 없는 어린이, 여자 등의 사회적 약자는 더더욱.)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한한 관용에 대해 그는 마치 악의 소굴에 갇힌 듯 저항하고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주교가 그를 용서한 것은 그를 향한 최대의 공격이자 타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속 동요가 일어나는 것이리라. 만약 주교의 관대함에 저항할 수 있다면, 그의 냉혹한 마음은 굳어질 것이다. 만약 그것에 굴복한다면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적개심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이기든가 지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 갈등은 자신의 악함과 주교의 관대함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될 거라는 사실 이었다. 그의 내면은 완전히 변했다. 주교의 영향을 더 이상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에서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프랑스의 격동의 시대' 보다 인간 장발장의 '사랑' 이었다. 장발장이 처음 사랑이라는 가치를 느낀 것은 미리엘 주교의 따뜻한 온정 때문이었다. 그의 사랑은 장발장을 마들렌으로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그는 과거를 지우고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힘들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었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영혼을 음울한 곳에서 구원해 준 미리엘 주교의 말처럼.

그가 코제트를 보았을 때, 코제트를 손에 넣고 구출해 냈을 때, 자기의 심장이 힘차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숨어있던 정열과 애정이 모두 눈을 떠 이 아이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코제트가 잠들어 있는 침대 곁으로 가서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마치 아머니와 같은 마음 속으로 어떤 열망을 느꼈지만 그게 뭔지는 몰랐다. 사랑하기 시작한 마음의 저 이상하고도 커다란 감동은 파악하기 어렵고 매우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흰 빛이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다 미리엘 주교는 그의 마음의 지평선에 미덕의 새벽빛을 가져다 주었으며, 코제트는 사랑의 새벽빛을 가져다 주었다.


장발장은 코제트를 사랑했다. 무한하고 이타적인 사랑이었다. 코제트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9살 짜리 꼬마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그녀는 그의 삶의 원동력이였고 하나의 빛이었다. 하지만 그는 코제트가 결혼을 한 후, 그의 남편 마리우스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코제트를 떠난다. 그의 강인한 늙은 가슴은 날카롭게 찢어졌다. 그의 강인한 불빛은 서서히 꺼져갔다. 모든 오해를 풀고,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장발장을 찾았을 때, 이미 늦었다.. 그 때 의사의 한 마디. "이분에게 필요했던 것은 당신들이었습니다!" 그렇다. 어떤 약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코제트를 향한 그의 사랑이었다.

그 어떤 것도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랑의 행복은 낙원이 되고, 그 낙원은 천국이 된다. 오오,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이 모든 것은 사랑 안에 있다. 사랑 속에서 그것을 찾도록 해라. 사랑에는 천국과 같은 명상이 있고 천국과 같은 즐거움이 있다.


사랑한다. 사랑했다. 그것 뿐이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인생의 어두운 주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뿐이다. 사랑하는 것은 성취하는 것이다. 아무도 인간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것, 사랑을 없앨 수 없다.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이다. 사람을 강인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가 자베르를 굴복하게 만든 것 역시 그에 대한 연민, 자비, 헌신, 친절, 사랑이었다. 우리는 사랑 하는가? 혹시 그 사랑이 타자가 어떤 사람이든, 무엇을 좋아하든 자신의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어긋난 사랑은 아닌가? (종종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기에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타인을 배려한다. 우리는 사랑하기에 고통스럽고, 사랑하기에 슬프다. 사랑하기에 불안하다. 사랑할 때는 마음의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사랑을 찾는 인간과 기쁨을 찾는 인간이 동시에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고통스럽더라도, 불안하더라도, 누가 뭐래도 사랑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요, 강인한 힘을 갖게 한다. 누구를 사랑하든, 사랑하자. 삶의 의미를 찾자. 19년동안 복역하고 희망이 없던 죄수에게 빛을 준 것은 사랑이었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그 자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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