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와 개츠비 다시 읽기 >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잡담

내가 만난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겠으나, 작가 분들은 말을 그렇게 잘 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역시 말보다 글이다. 하지만 그 예외가 있는데, 김영하 작가와 황석영 작가. 그 두사람의 재치와 입담은 정말 좋다. (글도 좋다) 어제 김영하 작가와 함께 읽는 위대한 개츠비 강연에 갔는데, 다른 것들은 거의 내용에 대한 설명들이라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질문 '왜 개츠비는 위대한가?', '왜 위대한 개츠비 인가?' 라는 것에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 하셔서 신선했다. 나는 그동안 위대한 개츠비가 그냥 비꼬는 거, 반어적인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는 물론 해석은 다양하고 그러한 의도도 있을 수 있지만. "1920년대 The great Houdini 에서 따온 것 같다. Houdini는 1920년대의 유명한 마술사인데, 그것을 따옴으로서 환상을 쌓아올린 인간의 무모함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위대한 개츠비 하면 딱 와닿지 않지만, 1920년대 당시 사람들은 위대한 개츠비를 보며 위대한 후디니를 연상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물론 자신 역시 한 사람의 독자라는 이야기를 덧붙히면서. 그렇다. 김영하 작가 역시 한 사람의 독자이며, 특히 이미 죽은 작가의 책은 더더욱 해석이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작가라면, 그 작가의 말이 곧 정답이고, 법이겠지만 말이다.

김영하 작가는 번역은 또 다른 책 읽기의 방법이며, 책을 천천히, 하나하나 곱씹어 읽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더 이상의 번역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서 힘들 것 같지만, 책을 천천히 곱씹어 보기 위해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했다. 나도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번역만큼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곱씹으면서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몸에 새기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처음에 읽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면서, 작가가 숨겨놓은 복선들을 보물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찾아가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흠..그나저나 위대한 개츠비는 세 번 넘게 읽었다.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난 하루키와 친구인 건가? 안녕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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