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Together, 함께, 같이의 가치. Book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홀로' 라기보다 '함께', '같이' 라는 가치가 더 두드러지는 듯하다. 진화심리학과 생물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등 분과 학문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공유, 협력, 함께, 공감 ’등의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그 두꺼운 <공감의 시대>라는 책도 있지 않나? 아마 '함께' 라는 것을 필두로 해서 책도 참 많이 나왔다. 그 이유은 아마 전쟁과 불평등, 빈곤과 같이 그칠 줄 모르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고 있는 수많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협력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규정하거나 협력을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특성으로 단정하는 것만으로 오늘날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데엔 부족함이 있다.

노동·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색다르고 폭넓은 접근을 통해 협력의 사회학적 의미를 고찰한 책이다. 이 책은 세넷이 구상하고 있는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의 두번째 책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기술에 대해 설명하려는 프로젝트로, 이번에 나온 <투게더>는 인간이 사회적인 협력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전근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협력과 관련된 무수한 사례와 이론을 끌어다 펼쳐놓는다. 이를 관통하는 지은이의 주된 문제의식은 협력이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협력을 하나의 '실기'를 곧 기술로 파악해야 한다.  리처드 세넷은 불평등이 만연하고 노동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는 현대 사회가 남과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 안으로 움츠러드는 ‘비협동적인 자아’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능력은 어떤 이념이나 제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작업장’에서 ‘실기’로서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간의 차이는 국적보다는 전국적 연대와 지역적 연대간의 대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론적으로는 두 진영 모두 공동의 불의와 대적하고 있었으므로 함께 섞여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향식과 상향식 노선의 차이는 기질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분리가 현대에 우리에게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기질적 차이는 좌파 내부의 투쟁보다 더 넓은 나침반에 따라 움직인다. (85쪽)

공감과 감정이입은 둘 다 인식을 전달하며, 둘 다 연대를 형성하지만, 하나는 끌어안음이고 하나는 즉각적인 만남이다. 공감은 동일시라는 상상적 행동을 통해 차이를 극복한다. 감정이입은 그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른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 공감은 대개 감정이입보다 더 강한 감정으로 여겨져 왔다. 왜나하면 "나는 너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에 악센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에고를 활성화 시킨다. 하지만 감정이입은 더 강력한 실천이다. (51쪽)

또한,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로 구분될 수 있는 이 두 흐름에서 지은이는 협력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지적해낸다. 곧 정치적 좌파가 협력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면, 사회적 좌파는 협력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처드 세넷은 이런 비교의 구도에서 대화적 대화와 감정이입에 더 무게를 싣는데, 이들이 현대 사회에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협력의 기술을 갈고닦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협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것’을 되살리기 위해선 나와 남의 차이에 기초한 대화적 대화, 감정이입이 더욱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를 통해  "20세기는 연대의 이름을 내걸고 협력을 왜곡했다" 고 말한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확신감을 되살리려는 연대감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 생활을 잔인할 정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리처드 세넷은의 <투게더>를 통해 ‘사회적인 것’을 이룰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역량에 더욱 주목해 보자, '함께'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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